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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오직 노동자만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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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의 공범은 누구인가?
큰메 (kimmiri0214) 조회수:1640 추천수:14
2019-10-30 06:31:23

사용자의 공범은 누구인가?

 

(포항) 생산기술부 대의원 김형중입니다.

‘정직’이라는 징계기간이 끝나고 6월 11일부터 근무하는 생산기술부 사무실에는 수십 명의 사무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열심히 수행하는 그들에게서 포스코의 진정한 주인은 노동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오다가다 부딪치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저 사람은 분노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 없는지라 저를 대하는 그들의 표정과 태도로 미루어 짐작할 따름입니다. 왜냐하면 기관차 운전직인 제가 기관차가 아닌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스코지회 대의원으로서 유배와 다름없는 생활이지만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침묵하는 다수의 응원 때문입니다.

“이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었노라고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유명한 말입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하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노동자에게 최대 비극은 사용자들의 거친 폭력이 아니라 약자로서 습관화된 패배의식과 자포자기입니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자신의 힘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노동자들에게 패배의식과 자포자기를 끊임없이 주입시킵니다. 사측이 포스코지회를 무너뜨리려는 것도 노동자들에게 ‘우리들은 별 수 없다’라는 패배의식과 ‘우리들은 할 수 없다’라는 자포자기를 심어주려는 의도입니다. 사용자들의 술수에 놀아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물의 끓은 점은 100도라고 합니다. 물은 온도가 99도까지는 아무리 가열해도 조용하지만 마침내 100도가 되면 펄펄 끓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인권침해를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습니다. 노예는 노예로서 인권감수성이 있고, 주인은 주인으로서 인권감수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노예처럼 사는 사람일지라도 인권침해와 공동체 파괴가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으면 결국 끓어오르고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약자들의 침묵은 강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 끝까지 침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일은 모르는 것입니다. 태양이 뜨거운 줄 모르고 하늘높이 날다가 추락한 이카로스처럼 국민들 무서운 줄 모르고 권력을 휘둘렀던 이명박, 박근혜 전대통령이 초라한 모습으로 감옥에 들어갈 줄은 어느 누가 짐작했습니까? 권력과 언론 그리고 자본과 결탁하여 정권 재창출이 공고한 것으로 보였던 ○○○당이 그렇게 무너질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이 촛불혁명을 이뤄낸 사람들은 부정에 침묵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다수의 국민이었습니다. 선하고 선한 국민들은 그 동안 알게 모르게 분노의 불을 계속 지피고 있었으며, 끝내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자들을 촛불로 권력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우리나라가 불의에 망하지 않고 발전하는 것은 선한 국민들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운동의 끝은 결국 인권이더라고요.”

후배의 말은 통찰력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습니다. 그럼 포스코 사용자들의 인권지수는 얼마일까요? 그 답의 산증인은 바로 저입니다. 저들의 저열한 수준으로 인해서 진짜 노동자들은 오늘도 침묵하면서 분노의 불을 지피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그 분노의 불에 의해 정의라는 물이 끓으면 포스코지회는 대표노조가 되겠지요. 그날이 되면 침묵했던 사람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저는 부정을 보고도 침묵했던 사람을 모두 공범으로 보지 않습니다. 비록 사용자 앞에서는 침묵했지만 부정에 반응하여 분노의 불을 지폈던 사람과 무반응으로 분노의 불을 꺼트렸던 사람으로 나누겠습니다. 왜냐하면 사용자의 공범은 분노의 불을 꺼트리고 그들의 부정한 행위를 무반응으로 동의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포스코지회 조합원 캠페인]

“질긴 자가 승리한다!”

http://www.pksteel.kr/bbs/boar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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