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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몰아친 날의 근무 (57살의 내가, 26살의 나를 만나다)

  • 큰메  (kimmiri0214)
  • 2019-06-04 09: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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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월 23일 토요일(25살 5개월)

 

 

K!

째지는 비명소리를 지르며 내닫는 폭풍의 소리를 듣고 있니? 숨통을 끊어버릴 듯이 몰아붙이는 거센 손길 앞에서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는 몸짓을 하며 일하는 나의 모습이 잘 보이니?

한 발자국의 걸음도 옮기지 못 하게 하겠다는 거친 손길과 날카로운 눈길 앞에서 나의 허약해진 정신은 덜덜 떨고 있다. 방금 기관차에서 나온 몸뚱이를 감싼 두꺼운 작업복 사이로 어느새 면도날 보다 날카로운 바람이 파고 들어온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뚱이를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것이 들리는 것 같다. 고개를 들 수 없다. 머리를 띵하게 하고, 하찮은 몸뚱이를 현장에 던져버리겠다고 위협하는 목소리에 질려. 나는 목이 움츠려들고, 코에서는 콧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맺힌다. 파랗게 질린 안면에는 주름이 깊게 패인다.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터지며, 하얀 입김을 안개처럼 뿜어낸다. 폭풍이 커다란 소리를 지르며 안변에 손자국을 내는 가운데, 열기 잃은 태양은 거기에 있다.

부끄럽다고 고개를 내민 태양이 있기에, 손끝의 감각을 상실하고 시끈시끈 아파오는 발가락을 풀기 위하여 발을 동동 구르며, 더욱 작아진 몸을 위안한다.

K!

야간근무자가 걱정된다. 그들은 희끄무리한 전등 빛을 받으며, 덜덜 떨리는 턱을 꽉 다물고 어둠의 공간 속으로 빨려 갈 것이다. 달리는 그들 앞에 추위와 바람 그리고 공범자가 된 수증기와 자갈이 힘을 합쳐 보석처럼 반짝이는 두 개의 평행선(선로) 밑에서 그들(야간근무자)을 유혹할 것이다. 그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바람을 잠재워 달라고 기도하자.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리고 저 자연의 횡포를 잠재워야 할 텐데…

 

‘폭풍이 몰아친 날의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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