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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는 오직 노동자만 보고갑니다.

포스코 나무위키

  • 소운  (poscoman68)
  • 2019-04-02 17:4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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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mu.wiki/w/%ED%8F%AC%EC%8A%A4%EC%BD%94

 

1. 개요[편집]

세상을 더 넓게 Unlimit the Limit

포스코의 캐치프레이즈
 
50년의 도전, 100년의 새꿈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 슬로건

대한민국의 대기업이자 포스코그룹의 지주회사. 자회사들은 사실상 포스코에 필요한 사업을 영위한다.

철강산업을 주 산업으로 하며, 2018년 현재 포스코그룹은 대한민국에서 재계서열 6위(자산총액 기준)의 기업 집단으로 자산총액은 약 79조 7천억원이다.

전신은 1968년 설립된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이며, 2002년 공식 회사 명칭을 포스코로 변경하였다. 그래도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항제철이라고 부른다. 애초에 '포스코'라는 사명 자체가 '포항제철'을 영문화시켜서 만든 명칭이기 때문. IMF 외환위기 이후 민영화 과정을 거쳐 2000년에 완전 민영화가 되었으며, 몇 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포스코와 그 계열사가 공식적으로 기업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전문 경영인이 운영하는 대기업 집단이며, 지배구조 최우수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2. 연혁[편집]

 

2.1. 창업 및 포항제철소 건설[편집]

파일:포항제철ci.jpg [1]

포항종합제철공장 착공식


포항종합제철 제2기 설비공사 준공식 및 화입식


포항종합제철, 제 3기 설비확장공사 준공식


포항종합제철, 제 4기 설비 준공식

포항종합제철, 제 4기 설비 준공식

박정희 대통령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하고 있던 중 기초산업으로 철강 산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경제사정으로 볼 때 국내자금으로 종합제철소를 짓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채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제철소 건설을 위해 주식을 공모했지만, 목표액 33억 원의 0.4%인 1,300만 원만 모였을 뿐이었다. 종합제철소 건설 계획은 다들 무모한 일이라며 반대를 했고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이를 두고 과시용 사업이라며 비웃기도 했다.

종합제철소 건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1965년이었다. 그 해 5월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 피츠버그 철강단지를 방문해 제철소 건립에 대한 의지를 더욱 더 다지게 되었고 미국의 제철소 건설 기술 용역회사인 코퍼스(Koppers Co. Inc)의 포이(F. Foy) 회장을 만나 이 의견을 피력하였다. 포이 회장은 국제제철차관단을 만들어 종합제철소 건설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종합제철소 건설은 시작부터 장애물이 많은 상황이었다. 세계은행은 채산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국내외의 많은 기관이나 회사들도 마찬가지로 제철소 건설을 회의적이라 보았기에 선진국들은 제철소 건설을 위한 차관 제공을 철회했다. 이렇게 제철소건설은 물건너가는가 싶었는데 군인 출신으로 박정희의 신임을 받는 박태준이 한일기본조약으로 받은 금액의 사용처를 둘러싸고 양국간에 이견이 발생해 1969년 한일각료회담에서 농업지원분야에 사용하기로 양측이 합의한 청구권 자금을 제철소건설자금으로 바꾸어 이용한다는 아이디어로 박정희를 찾아가 허락을 받아낸 다음 일본을 찾아가 당시 야하타 제철의 이나야마 사장과 신일본제철의 나가노 시게오 사장, 일본강관의 아카사카 다케시 사장 등 일본 철강산업의 주역들을 만나 일일이 설득해 일본정부는 제철기술을 제공하기로 했고, 신일본제철의 기술로 지어지게 합의를 보게 되었다
첫 삽을 뜰 때 “실패하면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때는 우리 모두 우향우해 영일만에 몸을 던져야 할 것”이라는
유명한 일화는 '우향우 정신’으로 이어져 지금까지도 포스코의 도전정신으로 내려오고 있다.

부지 선정에서도 잡음이 있었는데, 당시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이었던 황병태[2] 등의 에 의하면 당시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이 종합제철추진단장으로 사업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제철소 후보지는 충남 서천(비인)[3], 경남 울산[4][5], 삼천포[6] 등 3곳이었고, 포항은 후보에도 없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자기고향 챙기기는 여전해서 충남 출신인 공화당 김종필 의장과 김용태 원내총무(현재의 원내대표격)가 서천을 밀고, 이후락 대통령비서실장이 울산을 밀고, 박정희의 대구사범학교 동창 서정귀[7]가 삼천포를 밀고 있었다.[8] 큰 돈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각 지역을 미는 쪽에서는 대규모 투자라 거의 반목숨걸 듯 들이댔고 박정희는 세 부지를 둘러보고 신중히 결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황병태만 있는 자리에서 슬쩍 물어보고 포항에 대한 설명[9]을 들은 후 연극을 하자고 했다고 한다. 이후 열흘쯤 후 경제동향 보고회 자리에서 뜬금없이 황병태를 찾은 후 제철소 부지 설명을 요구하고 포항 이야기를 하게 하더니 즉석에서 포항으로 낙점했다고 한다.[10]

예정보다 일정을 1개월 앞당긴 1973년 6월 9일 마침내 용광로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왔는데 이는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용의 3배에 해당하는 1205억원의 자금을 쏟아 부은 결과물이었다.

조업 첫해인 1973년 포항제철은 매출액 1억달러, 순이익 1200만달러(약 46억원)를 달성했다. 이로써 포항제철은 세계 철강 역사에서 제철소를 가동한 첫해부터 이익을 낸 유일한 기업이 됐다. 하지만 아직 국제규모에 크게 밀리는 기업이라 확장이 절실했고 제철소 4기가 완성될 때까지 13년이 걸렸다.

1978년 중국의 최고실세로 떠오른 덩샤오핑(鄧小平)이 신일본제철을 방문해 중국에 포항제철 같은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는데 (토법고로삽질을 경험한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부러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듯) 이나야마 신일본제철 회장은 “제철소는 돈과 기술로만 짓는게 아니라 사람이 짓습니다. 박태준 같은 사람이 없으면 포항제철과 같은 제철소는 지을 수 없습니다. 포항제철은 기적입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한 일화가 있다

2.2. 광양제철소 건설[편집]


광양제철소 1기 설비공사 준공식


광양제철소 2기 공사 준공


광양제철소 3기 준공

현대차그룹현대제철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포항제철 측이 제2제철소 사업권을 갖게 되었고[11], 지리적인 영향을 다각도로 종합해서 전두환 정권 때 광양만에 있는 금호도가 제2제철소 부지로 결정되었다. 다른 후보지[12]울진은 너무 북쪽에 있어 안보 위협이 문제가 되고, 서산시·태안군의 아산만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반면 광양만은 수심이 깊고 조수간만의 차도 그다지 크지 않았을 뿐더러 전라도에 있다는 점에서 균형발전에도 들어맞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로는 광양만이 최적의 입지인데도 아산으로 하라는 압박이 있었다고 한다. 부지가 광양만으로 정해진 이후에도 포철 고위직들이 "호남인데..."라며 난색을 표하면서 광양만에서도 경상도 쪽인 하동에 짓자는 말을 했으나, 박태준 회장이 직권으로 광양으로 결정했다고 한다.[13] 이러한 이야기들이 보여주듯이 박태준이라는 상식과 합리적인 사고를 갖춘 유력자가 없었다면, 광양제철소는 없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발 더 나아가자면 여수국가산업단지까지 말이다.[14] 부지조성작업을 거쳐 1985년 시작된 광양제철소 건설은 1992년 4기 공사가 완결됨으로써 포스코는 조강생산 2,080만 톤(연간)을 달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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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소 부지가 굉장히 크다. 대지 넓이가 무려 2,080만㎡(630만평)[15]로 세계 최대 규모의 제철소이며 대한민국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생산공장 중 단일부지로는 제일 넓다.[16] 1992년 제철소가 세워진 이후에도 잦은 간척 사업이 이뤄지면서 넓이가 더 넓어졌다. 넓이 만능 측정기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하며 기초자치단체서울 성동구의 경우 면적이 1,684만㎡ 정도인 것을 볼 때 일개 제철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철소 견학을 가 보면 공장 안내를 해주는 간부직원이 "포항제철소는 주조부터 압연까지의 공정이 U자 형태로 돌아나오게 배치되어 있지만, 광양제철소는 그보다 뒤에 지은지라 신기술이 적용되었고 부지도 훨씬 넓어서 용광로 주물부터 압연까지 전체 공정이 일자형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해주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제철소 뒤에 있는 금호동 사원 주택단지까지 합치면 조그마한 신도시[17]라 불릴 정도. 실제 제철소와 광양 시내는 교량으로 연결된 또 다른 도시처럼 구성되어 있다.

여담으로 이 광양제철소가 들어선 광양만 지역은 본래 어업, 특히 김 양식이 대단히 발달한 지역이었다. 마침 김(金)과 철을 뜻하는 한자가 같아서 호사가들이 이에 대한 말을 많이 하는 편. 광양제철소 한켠에 이를 기념하는 비석이 남아 있으며 현지 어민들은 이주 보상금 및 제철소 취업의 우선권 등의 보상을 받고 광영동 등에 이주했다.

2.3. 이후 현재까지[편집]

 

2.3.1. 대략적인 개관[편집]

이후 포스코는 1992년 김영삼 정부의 세무조사로 박태준 회장이 일본으로 떠나는 등 체제가 흔들리면서 부진을 겪을 뻔 했으나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다. 박태준 회장은 1997년경 재보선으로 복귀했고 DJP연합으로 정권교체를 이루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업은 다시 안정되었다. 뉴욕런던 증시에 상장되는 등 기업가치를 높였으며, 외환위기 이후 2000년에는 정부지분을 완전 매각함으로써 민영기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18] 2002년에는 공식적인 회사명을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에서 "포스코"로 변경[19]하였고, 덩달아 CI도 변경하게 되었다.

파일:포스코_NYSE상장(2).jpg<img class='wiki-image' width='100%' src='//w.namu.la/s/2f52af01ecc2b91c399a3d5d9a1232664f0ab3fa496518ea3e4175523b7e9e14a5373067788e4a2a1764978862012dad3bb4e534d267607095edd7ced0e3505303fdab3ae9c8e4e596230671e605c6f208a6b6e01b895e8cb1b5b8034a0df4c5' alt='파일:포스코_NYSE상장(2).jpg'> 파일:포스코_NYSE상장.jpg<img class='wiki-image' width='100%' src='//w.namu.la/s/b82c8ee385ddff1db1ae9ea50610a65f3ad844a836b66cb1f1a9221eaf6ca1e16e13264f39f84810f694de659da6883865829f4bff2feddb5b52e208113d51ceb35eb1e52bd5bb7f7a1fd616210307ba6caeb5055307d449e8e217c106b365b0' alt='파일:포스코_NYSE상장.jpg'>

2007년에는 차세대 제선 공법인 파이넥스 상용화 설비를 준공하여 운영 중이며, 인도베트남을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의 경우 외부에서 그룹 회장이 온 경우는 단 한 번, 김영삼 정부 시절 박태준 사단을 퇴출하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만제 전 회장 뿐이다.[20] 이외에는 모두 포스코 내부 인사가 임명되었는데, 특히 이구택 전 회장은 포스코 공채 1기이다. 하지만 공기업에서 출발한 기업이니만큼, 여전히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편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박태준 사단은 대거 복귀하였는데 김대중 정부 시기 5대 유상부 회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6대 이구택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고 이구택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7대 정준양 회장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회장 교체 과정에서 모두 정치권 개입이 있었다는 잡음이 있었다. 그리고 정준양 회장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퇴(...)했고 후임으로 권오준 회장이 취임했다. 그리고 권오준 역시 문재인 정부 성립 11달 만에 사임하며 그 전통(?)을 이어갔다. 포스코 회장 임기는 대략 5년이다.

2.3.2. 2008년 ~ 2017년[편집]

2008년까지만 해도 포스코는 일본의 경제학자들이나 산업학자들, 심지어 일본 재계조차 두려워하던 초우량 대기업이었지만, 그러한 포스코 본사를 비롯한 전 그룹의 경영상태는 정준양 회장과 권오준 회장을 거치면서 매우 나빠졌다.

포스코의 내부 고발자인 정민우[21] 씨가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 15회에 나와서 말하길,
"창업자이신 박태준 회장 이래로 재직한 회장들 중 가장 흠결이 많고 양아치 같은, 천박한 인간이다.", "혀를 낼름거리는 걸 보면 M이랑 똑같아요. 그래서 ㅇㅇㅇ에서 '언제 포토타임을 잡아야 할 지 모르겠다. 맨날 혀를 낼름거리고 있어서....'라고 말했어요."

라고 말하며 극딜을 퍼부었다. 사실, 정준양은 당시에 포스코건설 사장이었고, 그와 경쟁하던 윤석만 사장은 포스코 본사[22]의 사장이어서 윤석만 사장의 회장 취임을 점치는 이들이 더 많았다는데, MB의 또 다른 집사이자 그 당시 실세 중 하나였던 박영준이 정준양을 밀기 위해 윤석만에게 회장 후보 사퇴를 권고했고, 이구택 회장마저 이명박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여 정준양 지지를 선언한 것이다.

2008년에 대우조선해양이 인수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오자 인수를 검토하던 이구택 당시 포스코 회장이 이동희 기획재무부문장(전무)에게 지시하여 포스코그룹 내부의 실탄을 점검하게 했는데, 금고에 축적된 현금이 8조 원, 2~3일 내에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5조 원으로 총 실탄이 13조 원이었다. 당시에 그 정도 실탄을 보유한 국내기업은 정말 드물었고 2018년 현재도 거의 없다. 그런데 그룹 내부의 현금이 정준양 회장 시절을 거치면서 비상식적인 인수합병과 투자 사업으로 모두 고갈되어 기본적인 운영자금 1조 5천억 원을 마련하려고 보유 주식이나 부동산, 채권 등 회사 내의 돈 되는 자산을 처분하면서까지 현금을 조달해야 할 지경까지 몰렸다. 심지어 그 돈 되는 자산들도 제 값을 받고 판 게 아니라 헐값에 팔아넘긴 경우도 빈번했고, 같은 시기에 5.4조 원에 불과했던 부채는 29조 원으로 늘어나는 등[23] 회사 상태가 껍데기만 겨우 유지할 정도로 사정이 어려워졌다.

이렇게 그룹 전체에서 빠져나간 돈의 규모가 사실상 uncountable이지만 최대 5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이명박, 이상득 형제가 관여했을 거라는 의혹이 있다. 그 유출된 50조 원에 의문 투성이인 해외투자 실패 사례들이 포함된다고 하는데, 그 예가 에콰도르의 작은 부실 건설회사인 산토스 CMI, 그리고 세트로 인수한 EPC 에쿼티스 인수 건이었다.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이 산토스 CMI와 EPC 에쿼티스를 800억 원에 인수했는데, 실무자들은 산토스 CMI의 가치를 100억 미만으로 산정했고, 인수를 해도 큰 효과를 못 볼 거라고 했다. 그럼에도 800억 원에 인수한 건 윗선에서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기 때문. 대한민국 여느 대기업이 거의 다 그렇지만, 창업자부터가 장군 출신인 포스코 그룹의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 특성상 절대 거역할 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의 이 EPC 에쿼티스는 주소지인 영국 런던의 사무실에 가도 직원이 한 명도 없고 주소지만 빌려서 등록한 완벽한 페이퍼 컴퍼니였는데도 산토스보다 300억이 더 많은 550억 원에 인수하여 총 800억 원을 원래 소유주인 도밍게스라는 사람에게 지불했다. 그리고 인수 중개 수수료 300억 원을 EPC에 지불했다는데, 수수료가 에콰도르가 아니라 스위스 은행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그 다음, 해마다 증자를 해서 총 600억 원을 투입했는데, 실적이 안 좋아서 철수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매각 직전에 800억 원을 EPC 에쿼티스에 증자하고는 산토스와 세트로 묶어서 68억 원을 받고 회사의 원래 주인이었던 도밍게스가 세운 IAA에게 산토스와 EPC를 되팔았는데, 총 1,400억 원을 증자받았다는 EPC를 0원으로 손실처리했다고 하는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업상 손실이 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돈이 사라져 버린 것. 게다가 산토스 CMI는 중남미 각국에 지사가 있는데, 그 동안 포스코에서 산토스에 지원한 운영지원금 등의 자금이 최소 1천억 원 내지 최대 3천억 원에 달할 거라고 한다(...). 결국 산토스를 인수한 건 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더 크고, 은밀하게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이게 사실이라면 이 한 건으로만 3,500억 원 내지 5,500억 원이라는 거액이 증발(...)한 게 된다.

한편, 국내에서는 대우인터내셔널 인수협상 때 SK그룹에서 2조 원 이하가 아니면 인수하지 않겠다고 하여 포기[24][25]했음에도 3조 4천억 원이라는 가격에 인수했다고 한다.

이후 다스 뵈이다 16회에도 정민우 씨가 나왔는데,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건 이들의 해외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전 세계의 쓰레기 같은 광산이나 유전, 가스전 등을 알아본 다음, 포스코나 자원개발공기업들로 매입하게 하여 투자 명목으로 자금을 투입한 다음, 그 돈을 각종 명목의 투자 손실로 처리하고 뒤로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라고 추가로 폭로했다.

이 과정에서 인수 주관사였던 메릴린치 증권에 커미션으로 최소 1천억 원 이상, 최대 3천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지출됐을 거라고 한다. 이후, 하베스트와 날의 인수 주관사도 메릴린치에서 맡았고, 다른 자원 투자 주관사도 메릴린치가 많이 맡았다(2018년 2월 27일 PD수첩 방송분 참고). 참고로 당시 메릴린치 서울지점장이 김백준 전 총무기획관의 아들이었던 김형찬(...)[26]이다.

이 내용은 최승호 MBC 사장이 뉴스타파에서 활동하던 2014년 경에 방송했던 에피소드였는데, 내부 고발자인 정민우의 증언을 통해 신빙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다스 뵈이다 15화 2부 "마적떼와 포스코"[27]에도 출연한 그녀는 이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산토스 CMI 인수처럼 1천억 단위 이상의 건은 시작에 불과하고 이보다 작은 100억 단위 액수의 건들은 수도 없이 많아서 상기한 것처럼 손실 규모가 uncountable이며, 이를 통해 이명박 정권 당시의 실세들은 물론이고, 당시 포스코의 사외이사이자 이사회 의장이었던 안철수까지 비판하였다.

여기서 나온 발언을 인용하면 정준양 때는 10원에 불과한 회사를 1,000원에 사는 식으로 포스코의 현금을 MB 일당이 빼돌렸고, 안철수는 포스코 이사회 시절 때 이런 말도 안 되는 투자들을 이사회 이사의 직권으로 모두 찬성했다고 한다.[28] 불우이웃돕기 후원, 포스텍 기숙사 건립 지원 같은 사회공헌 활동 안건 3건은 모두 반대했고, 사외이사들에게 2천 주씩 스톡옵션을 줄 때는 넙죽넙죽 받아먹었다는 것.[29]

후임이었던 권오준 때는 더 가관이어서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1,000원짜리 자산을 10원에 파는 식으로 거덜냈다고 한다. 포스코가 보유한 각종 빌딩이나 주식 등의 우량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고 정준양 때 인수했던 그 썩은 부실회사들을 기존의 그룹 내 우량회사들과 합병시키고는 직원들을 대량으로 해고했다는 것[30].

또한 권오준 회장은 차세대 사업 아이템으로 리튬을 찍었는데, 의도는 좋아보였지만 실상은 엉망 그 자체였다. 볼리비아 리튬 개발 프로젝트는 현지 정권의 자원 국유화 때문에 불가능했는데도 MOU라는 형식적인 퍼포먼스를 마치 실제 사업 계약이 성사된 것처럼 과대광고해서 리튬 투자, 나아가 자원외교에 대한 환상을 퍼뜨린 것. 그 후, 정권이 바뀌고 포스코가 아르헨티나 광산 회사 리테아에서 인수해 개발하겠다고 했다가 포기한 리튬 염호는 해발 4천 m(!!!)의 고지대에 있는 데다,[31] 지도도 명확하지 않고 전파 수신도 엉망이어서 현장 탐사취재 차 파견된 PD 수첩 담당자들과 이들을 안내하던 현지인들 모두 "(여기 오는 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라고 푸념을 늘어놓을 정도의 험지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여기서 염수를 공급 받아 가공하겠다고 광양에 건설한 리튬 가공 플랜트는 자연증발 가공법[32]이 아니라 화학약품 가공법[33]이어서 환경 영향 평가 및 경제성 면에서 수지타산이 안 맞고, 염수 공급이 안 돼서 폐배터리를 재가공(...)하는 용도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호주 필바라 지역의 로이힐 광산[34]은 철 성분 함량이 포스코가 기존에 수입하던 것보다 낮고,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지역에 있는 데다 채굴과 수송을 위한 위한 인프라도 전혀 개발되지 않은 신생 광산이라 업계 관행에 따라 할인율이 최소한 13%는 되어야 하는데, 정작 핸콕 프로스펙팅에서는 그에 훨씬 미달하는 8%의 할인율을 제시했음에도 투자에 나섰다고 하고[35], 똑같은 호주 지역의 흄이라는 석탄 광산은 경관이 매우 수려해서 니콜 키드먼의 별장이 있을 정도인 곳이라 당연히 개발이 안 될 게 뻔한 데도 그걸 개발하겠다고 계속 투자하는 등(...) 크고 아름답고 버라이어티하게 삽질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고래해체팀(...)'이라고 포스코를 삼성에게 넘기려는 계획(!)까지 세우고 추진한 팀이 있었다고 하는데, 박태준 회장의 아들 박성빈이 이걸 알아채고는 "너희들 그거 안 멈추면 그동안 해 처먹은 거 다 까발릴 테다."라고 경고해서 그 계획이 무산됐다고 한다. 그 대신, "한 텀 더 가자, 우리 사람 한 번 더 세워서 반대로 빼먹자!"로 계획을 틀어서 내세운 게 권오준이고, 그 기간 동안 리튬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워 뭔가 사업을 하는 액션만 취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해 해외로 유출시키고, 돈 되는 자산들을 헐값에 내다 팔았던 것. 그 중 하나가 포스코건설 송도 쌍둥이사옥인데, 건설비로만 3,500억 가량이 들어간 건물을 부영그룹에 겨우 3천억 원만 받고 팔았다고 한다.

이렇게 회장이란 인간이 계속해서 리튬 사업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처럼 떠들고 다니는데, 정말 중요한 건 아르헨티나의 리테아 사와 포스크를 연결하던 브로커 최 모라는 인간이 자원개발 분야에서 유명한 사기꾼이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홍콩의 투자자들로부터 1천억 원(!)을 땡겼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포스코랑 사업한다고 하니 믿을 만하다고 여긴 투자자들에게 사기를 친 것으로 보인다. 권오준이 정말로 정상적인 인간이었다면 이런 사기꾼과 일할 리가 없는 데도 같이 손잡고 일했다는 건 누군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테고, 그렇게 그 사기꾼 최 모가 투자자들에게 사기친 돈은 그 누군가와 나눠먹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리고 대외협력팀장으로서 자신이 사내에서 맡았던 업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회사, 특히 회장을 비롯한 고위층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이 뒤로 밀려나도록 인터넷 포털 사이트나 홍보 에이전시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B2B 기업이라서 일반 광고가 불필요했던 포스코가 5대 광고 메이저가 된 건 결국 언론 통제 때문이었다고.

이런 오만가지 삽질에도 불구하고 포스코가 껍데기나마 유지할 수 있는 건 자원외교로 부실해진 공기업 3사와 달리 포스코는 철강과 건설 같이 현금이 유입되는 기본 수익 모델이 있어서라고 한다. 그래서 회사 내부가 얼마나 곪아터졌는지 알려면 결국엔 언론에서 이를 공론화해주고 정권에서 이에 호응해 수사에 나서는 것밖에 없는데, 전술한 것처럼 대부분의 언론은 포스코의 광고비 때문에 침묵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각종 비리 문건들이 수사기관과 일부 양심적인 언론들에게 입수되어 공개되고 있어서 시간문제일 거라고 한다. 게다가 산토스 CMI 건은 브라질 사정 당국에서도 3월 말 내지 4월 초에 공개할 거라고 한다.

2015년 3월 현재 포스코건설이 1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에 의해 압수수색을 당하고 이어 포스코 P&S와 포스코 플랜텍 등 여타 계열사까지 수사 대상을 확대할 조짐을 보이자 포스코 직원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 회장이 불명예 퇴진하고 수사 대상이 됐던 전례가 되풀이될까 우려하면서 수사의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고 정준양 전 회장이 출국금지가 되는 등 포스코도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결국 정준양 전 회장은 검찰 수사를 받았고 포스코도 2015년 3월부터 11월까지 검찰수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마저도 정민우의 증언에 따르면 우병우의 대표적인 기획수사였다고 한다. 당시 수사를 지휘했던 최윤수우병우 라인(...)이기 때문이었다고.

포스코가 이 지경이었으니 한 번 주식을 매입하면 10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일만큼 오래 보유하기로 정평이 난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괜히 주식을 매각한 게 아니었다.

투자 관련해서는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 – POSCO(005490) 참조.

최근에는 철강산업 자체가 불황을 맞으면서 역사상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주가는 날이 갈수록 최저를 갱신하는데 관세폭탄에 온갖 악재가 겹쳐서 개스코 소리 들으면서 수난을 겪고 있다.

조선업 불황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조선업 자체가 철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업종 중 하나이니... 자동차까지 망한다면? 설마.... 그나마 트럼프 정부의 무역수지 균형 추구 기조와 중국의 친환경 정책 등이 맞물리면서 LNG 수요가 높아진 덕분에 이를 운송할 LNG 운반선 수요가 2020년까지 최대 400척으로 예상되고, 그 중 대부분을 LNG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기술력을 쌓아올린 한국 조선소 3사가 대부분을 수주할 거라고 하여 이로 인한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리고 2018년 4월 18일, 만악의 근원 권오준 회장이 사임하며 포스코에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자진 사퇴를 할 정도면 이미 꽤 많은 내부 자료들, 그것도 자신과 자신의 뒤를 봐주던 이들과 연관된 비리 관련 자료들을 파기했을 수 있기 때문에 사정기관에서 수사를 해야 전말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2.3.3. 2018년 ~[편집]

7년만에 최고 수익을 갱신했다. 오랜 적자 속에서 나온 흑자로 포항시, 광양시의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보고있다.이후 새로 취임한 회장의 현장경영의 원칙 따라 중요 부서가 광양과 포항으로 이동된다. 서울로 가지고 갔던 전 회장과는 다른 행보이다.

3. 사가[편집]


1973년 제정. 작사는 박목월, 작곡은 김동진이 맡았다. 2008년 재녹음 이전까지 후렴구는 '포항종합제철'이었다.
(1절)끓어라 용광로여 조국근대화 / 줄기차게 밀어가는 장엄한 심장
겨레의 슬기와 의지를 모아 / 통일과 중흥의 원동력 되자
내일의 풍요한 조국건설의 / 내일의 풍요한 조국건설의
기적을 이룩하는 / 우리의 포스코

(2절)녹아라 쇳물이여 조국산업의 / 성장을 다짐하는 뜨거운 동맥
고도로 닦아낸 기술과 역량 / 우리의 자랑을 세계에 심자
예지의 굳센 날개 힘차게 펴고 / 예지의 굳센 날개 힘차게 펴고
육대주로 비약하는 / 세계의 포스코

(3절)보아라 해돋이를 푸른 영일만 / 쇠와 땀의 성지에 소망의 태양
철강인의 긍지와 사명감으로 / 불타는 정열을 함께 사루자
국민의 신뢰와 축복을 받아 / 국민의 신뢰와 축복을 받아
무궁하게 발전하는 / 영원한 포스코

출처는 여기이다.

4. 역대 임원[편집]

 

4.1. 명예회장[편집]

 

4.2. 대표이사 회장[편집]

현재 총 9명의 역대 회장 중 7명이 본사 사원 출신이다.
  • 박태준 (1981 ~ 1992)
  • 황경로 (1992 ~ 1993)
  • 정명식 (1993 ~ 1994)
  • 김만제 (1994 ~ 1998)
  • 유상부 (1998 ~ 2003)
  • 이구택 (2003 ~ 2009)
  • 정준양 (2009 ~ 2014)
  • 권오준 (2014 ~ 2018)
  • 최정우 (2018 ~ )
 

4.3. 부회장[편집]

  • 황경로 (1990~1992)
  • 정명식 (1992~1993)
 

4.4. 대표이사 사장[편집]

  • 박태준 (1968~1981)
  • 고준식 (1981~1985)
  • 안병화 (1985~1987)
  • 정명식 (1987~1992)
  • 박덕표 (1992~1993)
  • 조말수 (1993~1994)
  • 김종진 (1994~1998)
  • 이구택 (1998~2003)
  • 강창오 (2003~2006)
  • 윤석만 (2006~2009)
  • 이윤 (2006~2008)
  • 정준양 (2007~2009)
  • 이동희 (2009~2010)
  • 최종태 (2009~2012)
  • 박한용 (2012~2013)
  • 권오준 (2012~2014)
  • 김준식, 박기홍 (2013~2014)
  • 김진일 (2014~2017)
  • 황은연 (2016)
  • 오인환 (2017~2018)
  • 최정우 (2017~2018)
  • 장인화 (2018~ )
 

4.5. 대표이사 부사장[편집]

  • 정준양 (2006~2007)
 

5. 계열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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