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년대생 파트장,주임 친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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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po0013) 조회수:1174 추천수:14
- 2018-09-09 00:14:00
[ 60년대생 파트장,주임 친구들!! ]
친구들!!
나는 60년대 초반이야.
이름 공개하면 알수도 있을거야.
정확히 30년전 1988년. 박태준의 항복 선언으로 노조가 설립되어 현재는 사측에 길들여진 9명의 어용조합원이 있다는건 잘 알고 있을거야.
1990년. 다들 알다시피 조합원 최초의 직선제로 선출된 박군기위원장은 10명의 후보중 53%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서 민주적이라 할수있는 집행부가 들어서게 되었었지.
그후 약1년 동안 사측은 조합원에 대한 회유와 협박 그리고 탄압으로 18,000명에 이르던 조합원수가 급감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거 잘알거야. 다들 경험 했잖아?
그당시 주변에 노조 활동했던 친구들이 불이익을 받았고 심지어 해고를 당해 길거리에 나와 투쟁하는 것을 보면서 미안함과 동시에 사측이 저질은 만행에 분노를 곱씹으며 저주와 한을 가슴에 품은채 살았었지.
친구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어.
사측이 제공한 솜사탕처럼 달콤한 유혹은 지난날을 잊게하는 마취제가 되어 온몸에 파고들어 그 분노조차 잊고 사측이 깔아놓은 비단길을 걸어 왔던건 부인못할 분명한 사실이야.
아니, 비단길을 가기위해 우리 스스로가 분노로 가득찬 가슴을 쓸어 내리고 머릿속을 비웠잖아.
난 지금도 그랬던것을 원망안해.
군사정부가 우리를 비굴하게 만들었고 가족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어. 그게 원인이었던 거야.
신혼인 아내의 사랑스런 눈과 새근새근 잠자는 갓난 아이의 표정을 뒤로한채 노동자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권리는 그냥 선진 노동자의 구린 소리고 우리의 가족부터 챙겨야 했어.
가난 때문에 한을 품고 살았고, 가난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도 못해 우리 아이들 만큼은 나처럼 교대근무 하면서 사는것을 바라지 않았었어. 우리 아이가 잘되기를 바랐지만 좋은세상 만드는 것은 모르고 살았던거야.
가족과 회사의 거대한 힘이 우리 권리를 집어 삼켰던거야. 서로가 소시민이 되었던거지.
오히려 거대한 조직의 힘에 따라 우리도 모르게 차츰차츰 더 권위적인 괴물이 됐던거야.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정의롭지 못함과 민주화의 바람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했어. 잊고 살았어
친구들!!
그때 우리의 발목을 잡았던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들은 25년이 지나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성인이 되어 취준생이거나 취업을 했을거야.
솔까 우리때는 고도성장기라 대충해도 취직 걱정 없이 살았어.
지금 아들딸들 스펙 한참 못따라가. 그만큼 똑똑해.
난 경험많고 세상을 많이 안다고 하는사람 믿지않아. 오직 공부하는 사람만 믿어.
젊은 친구들이 천방지축 아무것도 모르는거 같아도 세상공부 우리보다 많이하고 살고있어.
지난 촞불의 위대한 혁명도 우리의 아들딸들이 시작해서 이뤄낸거잖아.
그래서 이젠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하고 나라 다운 나라의 기초를 이제 만들어 가고 있어. 아직도 멀었지만....
친구들!!
우리가 아들딸들에게 물려줄게 뭐가있겠나.
다들 알고있잖아? 재산이 아니라고~~.
그래, 정의 그리고 살기좋은 세상이야.
우리 아들딸이 살기좋은 세상.
요즘 포스코에 노조가 만들어지고 있어.
사측은 외부세력에 조종된다고 하는데 그동안 불평등했던 억눌렸던 감정이 자연스럽게 폭발하고 있는거야.
친구들!!
이제 선택해야 할때가 됐어..
걱정하다보면 모든게 걱정이야.
회사 다닐만큼 다녔어.
이젠 젊은 친구들이 하자는 데로 하면좋겠어.
아들딸들이 정의롭고 살기좋은 세상 만드는데 도와줄수 있겠나?
뒷짐지고 방관할까?
탄압의 도구로 쓰일 괴물이 될까?
우리가 선택했던 괴물, 민주주의에 대한 부채의식을 씻어 낼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거야.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자유, 평등에의 의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불평등에 도전, 제도개선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람답게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포스코 젊은 친구들이 뛰어들었어.
그들은 우리가 가지못했던 올바른 길을 가고 있어. 그들이 힘들어 질수도 있어.
우리가 손을 한번 잡아주자. 기댈 언덕이 돼자.
포스코에 근무하는 동안 마지막으로 한편이 돼자.
친구들!!
그렇게 하자.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