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지금부터 박태준 명예회장께 봉고례(奉告禮)를 올리겠습니다."
여성환 전 포스코 부사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봉고례? 흔히 쓰이는 말이 아니다. 여 전 부사장에 따르면, 봉고례는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기면 하늘에 올리는 의식이다. 회사 설립 이래 전직 임원들이 봉고례를 연 것은 처음이다.
"지금 포스코가 국민기업이 아니라는 식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는데, 이보다 더 큰 변고가 어디 있나. 그래서 창업주인 박 전 회장께 하늘에서 회사(포스코)를 잘 지켜달라고 부탁드리고자 모였다."(여 전 부사장)
황경로(92) 포스코 회장, 안병화(91) 전 포스코 사장, 이상수(91) 전 거양상사 회장, 여상환(85) 전 포스코 부사장, 안덕주(84) 전 포스코 업무이사, 박준민(82) 전 포스코개발 사장 등은 이날 함께 박 전 회장에게 헌화했다. 이후 '포스코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현 경영진에 대하여 우려를 표하며 자성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5월16일에 이어 두 번째다.
"포스코는 포스코 정신, 포스코 스피릿이 중요한 회사다. 그 요체는 무한한 창의에 의한 최선 또는 그 이상을 쏟아 세계정상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 몇 가지 빈약한 이유를 내세워 "더 이상 포스코는 국민기업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편다면 회사의 가장 귀중한 정신적 자산을 스스로 던져 버리려는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전체적인 내용은 16일 성명과 비슷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우리 창립요원 6인은 '타계하신 박태준 회장 등 25인을 포함한 포스코 창립요원 34인 전원의 이름으로 노구를 일으켜 최정우 회장(포스코홀딩스)을 비롯한 현 포스코 경영진의 진정한 자성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은퇴 후 일체 대외활동을 하지 않은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 용산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황 전 회장은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후 대한중석 관리부장으로 일하다 1968년 포철(포스코 전신) 설립 때 합류했다. 이후 포스코에서 상무, 부회장을 지내다 박태준 전 회장에 이어 1993년 2대 회장에 취임했다.
현재 생존해 있는 포스코 임직원 중 최고령 최고위직 인사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근무한 적은 있는가.
"전중선 (포스코홀딩스) 사장은 내가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 회장으로 있을 때 비서로 데리고 있었는데, 최 회장은 딱히 기억나진 않는다. 부회장 시절 한두 번 가량 만난 것 같다."
-어떤 기억이 있는가.
"순수했지. 같이 근무한 시기가 짧았다. 그런데 (최 회장이) 정치적으로(정치권 도움이라는 의미) 회장이 돼서 그런지 '과거를 단절하라'는 것을 하는데…. 난 90살 이후부터는 회사 일에 신경을 안 쓰려고 의식적으로 자료도 안 보고 (회사측에) 연락도 잘 안한다."
황 전 회장은 지난 4월 포스코홀딩스가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포스코는 더 이상 국민기업이 아니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창업자(박태준 전 회장) 흔적을 지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왜 이번 일(이메일 발송)을 '박 전 회장 흔적 지우기'라고 보는가.
"지주회사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 국민기업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고, 정체성을 바꾸는 거니까. 그걸 왜 굳이 아니라고 부정하는지."
-최 회장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것을 사전에 회사 원로들과 상의했나.
"전혀 없었다. 매스컴(대중미디어) 보고 알았지.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OB(퇴직 임직원)들하고 단절하라고 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작년 박태준 전 회장 추모 행사 10주년 행사를 조촐하게 연 것도 원로들이 서운해 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좀 소홀하게 했지. 코로나19 핑계 대고…."
-요즘 회사 사정을 어떻게 보는지.
"되게 위험하다고 본다. 포스코인터(포스코인터내셔널)는 왜 사? 신일본제철 같은 회사는 그런 것 안 해. 물론 최정우가 인수한 건 아니지. 가스전 개발 같은 걸 왜해? 나는 중우회(포스코 퇴직임원 모임)만이 포스코 경영진을 진심으로 견제한다고 봐요. 내용을 잘 알고 올바르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이 중우회 밖에 없거든. 다른 데는 자기중심이고."
-지금 최정우 회장은 중우회를 신경 쓰는지.
"지금은 (신경을) 안 써."
형식은 "자성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쓴 소리였지만, 원로들의 애사심은 여전했다.
안덕주 전 이사는 "회사가 대단히 잘못하고 있어 이러는 건 아니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내고 있지 않나"라면서 "'국민기업이 아니라'라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힐 때는 조심스럽게, 사전에 서로 상의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UPI뉴스 / 탐사보도부 송창섭 기자 realsong@upinews.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