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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포스코그룹 최정우 회장의 네트워크
관리자 (po0013) 조회수:151 추천수:0 121.180.237.185
2021-03-02 19:43:22

포스코그룹 최정우 회장의 네트워크

http://www.mediasr.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779





포스코 9대 회장. 사상 최초로 열린 이른바 ‘산재 청문회’에서 집중포화의 대상이 됐다. 최 회장이 취임한 2018년 7월 이후 포스코 사내 작업 현장에서 숨진 노동자가 총 14명에 달한다. 최 회장은 대국민사과를 발표하고도 ‘허리 지병’을 이유로 청문회 출석을 기피한 듯 비쳐져 더 큰 지탄을 받기도 했다.

최 회장은 본인의 좌우명을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떤 조직에서 어떤 일을 맡게 되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명감과 책임을 다하면 내가 있는 위치가 진리, 참된 것이라는 뜻”이라며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준점으로 삼아 온 좌우명이자 신조”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이 집중포화를 받고 있음에도 포스코 이사회는 그의 연임을 찬성했을 정도로 돈독하 신임을 받고 있다. 오는 12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그의 연임 여부가 확정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지난달 4일 기준 11.17%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임에도 불구하고 최회장의 연임에 대해 별도의 의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에 참여연대 등 9개 시민단체들은 포스코 임시주총 개최와 일부 문제가 있는 이사에 대한 연임 반대 의결권 행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한 바 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음에도 매번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여부는 정기 주주총회에 임박해 주총 2~3일 전에야 발표된다”면서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의견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일청구권을 기반으로 설립된 포스코는 사실상 공기업에 가깝지만 오너십이 없는 태생적인 한계때문에 현직 회장이 본인의 연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셀프 연임’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최정우는 포스코 사상 첫 비(非)엔지니어이자, 민영화 이후 첫 비(非)서울대 출신 회장이다. 2015년 대우인터내셔널 미얀마 가스전 매각을 둘러싼 포스코그룹과 대우인터내셔널의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에서 가치경영실장 부사장으로 선임되며 포스코그룹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포스코건설, 포스코대우(대우인터내셔널), 포스코켐텍 등 포스코그룹의 주요 핵심계열사를 두루 거쳤으며, 감사실 격인 정도경영실장을 역임한 경험도 있어 그룹 내 전략가이자 재무통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권오준 전임 회장과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미래성장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도 있다.

다만 그는 철강 부문을 맡은 경험이 없어 그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비철강 부문 위주로 관리자에 선임됐으며, 재무 분야 경력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포스코켐텍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신성장동력 사업 육성을 주도했으며, 이후 리튬, 양극재, 음극재 등 신사업을 진출에 박차를 가하면서 미래성장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아 전문성 우려는 불식한 것으로 보인다.

최정우는 1983년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포스코에 입사했다. 부서 배치 이후 그는 동기회장을 맡겠다고 나서면서 나중에 회사 회장이 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故) 김학렬

박정희 정권 당시 경제 부총리. 1972년 1월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입안한 주인공으로, 한국 초기 경제발전을 이끈 경제관료로 꼽힌다.

1969년 5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부임한 그는 2년 반 사이에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목표를 초과달성했으며 취임 첫해 경제성장률은 14.5%를 기록했다. 박정희는 그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뜨자 빈소를 찾아 “평생 나라를 위해 일만 하다 죽었다”며 대성통곡했다는 일화도 있다.

김학렬 전 부총리는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나 부산상업학교와 원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을 거쳐 해방 후인 1950년 제1회 고등고시(요즘의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직사회에 입문했다.

1952년 미국 미주리대학과 오하이오주 에크론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귀국 후 재무부의 사세국장·예산국장 등을 거쳐 경제기획원 차관, 재무부장관에 이어 대통령수석정무비서관을 맡았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과 특유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개발 초기의 난제들을 헤쳐나간 불도저형 관료로 유명하다. 그는 한국경제의 제반 기획과 운영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특히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입안과 포항종합제철 설립에 큰 역할을 하였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특히 그는 부총리 취임 시 자신의 방 칠판에 ‘종합제철 건설’이라는 글씨를 크게 써놓고 “포항제철이 완공되거나 내가 퇴임하기 전에는 절대로 지우지 말라”고 엄명을 내릴 정도로 포항제철 건설에 집착했고, 그 목표를 마침내 달성한 것을 가장 큰 자랑으로 삼았다.

최정우회장은 김학렬 전 부종리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포스코를 ‘필연’처럼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최정우가 포스코 설립의 주역인 김학렬의 특별한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정우가 중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할 당시 김학렬이 헬기를 타고 와 직접 상장을 주고 갔고, 이후 최정우는 여름방학마다 고성군 내 중고등학교의 전교 1등 아이들과 함께 김학렬의 고향집에서 합숙훈련을 받는 ‘뉴화랑’의 멤버가 됐다.

김학렬은 고고한 학을 연상시킨다 해서 일본어 ‘쓰루(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대일 교섭 초창기 일본 관료들이 한국의 신생 제철소를 ‘쓰루제철소’라고 불렀는데, ‘쓰루’란 학(鶴)의 일본말로 김학렬의 이름 가운데 글자 ‘학(鶴)’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그의 별명은 경제기획원 차관 당시 바로 옆 방의 장관실을 향해 드러내 놓고 욕을 하기도 할 정도로 직선적인 성향의 인물이었던 데서 유래했다는 평가도 있다.

생존 시 학같이 고고한 동시에 워낙 독설가로 유명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하직원들에게 무차별적인 욕설을 내뱉곤 했는데, 결재를 받으러 들어왔던 직원이 호되게 질책을 받은 후 캐비닛 문을 방문인 줄 알고 열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권오준

포스코 8대 회장으로서 최정우의 전임자. 권오준은 2014년 3월 취임해 2018년 7월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정권 교체 후 포스코 회장 교체’라는 공식을 굳혔다.

권오준은 사실 철강기술전문가로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포스코의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 때문에 그가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그가 경영 부문에서는 경험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재무전문가인 최정우가 그룹 내 컨트롤타워 격인 가치경영센터의 수장을 맡으면서 권오준 당시 회장이 추진하는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면서 포스코의 재무건전성을 일정 수준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권오준은 최정우 사장을 앞세워 4년간 혹독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비핵심 자산 구조조정과 함께 철강 부문 위주로 사업을 재편하면서 2017년 한때 71개였던 국내 계열사는 38개로, 181개에 이르렀던 해외 계열사는 124개로 줄였다. 그 결과 7조원 규모의 누적 재무개선 효과를 거뒀고, 해외 법인들과 포스코건설 및 포스코에너지는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권오준은 포스코의 연구개발 기반을 다진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자타가 인정하는 철강기술 전문가로 포스코가 특허권을 보유한 독점기술 대부분을 개발했다. 포스코가 자랑하는 ‘파이넥스 공법’도 권오준의 작품이다. 회장 취임 전까지 그는 포스코 연구소장,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경영자(CEO) 직책을 맡아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에 매진했다.

특히 신기술 개발은 물론 이를 생산과 판매에 활용했으며, 국내외 학술대회에서 연구발표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인천 송도의 포스코 연구개발센터 건립을 추진해 포스코를 세계 철강업계 최고 반열에 오르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는 평가도 받는다.

권오준은 1986년 박사학위를 받은 뒤 RIST(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 입사하면서 포스코와 연을 맺는다. RIST는 실용화 기술 전문연구기관으로 포스코가 전액 출연해 설립됐다.

당시 권오준은 몇몇 대학교로부터 교수직 제안도 받았으나 생산 현장에서도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포스코행을 택했다고 한다. 평소 “생산과 연구가 서로 시너지를 내기 위해 (그 둘은) 병행돼야 한다”는 지론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의 기술경쟁력 우위 확보에 앞장섰지만 권오준도 정권과의 유착 의혹은 피해가지 못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으며 선임 당시에도 정치권 입김으로 회장에 올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최순실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일찌감치 청와대가 권 회장을 낙점하고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전임 회장인 정준양 회장의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로 정준양의 측근으로 분류됐다. 그는 1950년생으로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윈저대 금속공학과 석사 과정, 피츠버그대 금속공학과 박사 과정을 이수했다.

정준양

포스코 7대 회장. 2009년 2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약 5년간 회장직을 역임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정준양이 회장으로 재직한 기간 대부분이 이명박 정부와 겹친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1년 뒤에 회장직에 올라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뒤에 물러났다. 그는 포스코 회장으로 선임될 당시부터 이명박 정부와의 유착 의혹이 제기돼 왔다.

정준양을 회장으로 선임할 당시 포스코 사장을 맡고 있던 윤석만은 “박영준 차관과 천신일 세중나모(현 세중) 회장이 회장 후보를 포기하라고 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다만 두 사람은 외압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정준양은 2012년 박근혜 정부 출범 약 9개월 후에 연임에 성공했음에도 돌연 사퇴했다. 당시 포스코는 세무조사를 받고 있었다.

그는 성진지오텍 등 부실기업을 무리하게 인수해 포스코에 약 1592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2015년 기소됐다. 당시 정준양이 이명박 정부 실세들의 도움으로 회장이 됐기 때문에 이 빚을 갚기 위해 부실기업을 비싼 값에 사줬다는 의혹이 일었다.

검찰은 장기간에 걸친 수사에도 정준양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 실패해 2018년 그는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사법부는 당시 다수의 증권사가 인수 대상 기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어 배임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포스코 안팎에서는 정 전 회장 재임 기간을 ‘잃어버린 5년’이라고 부른다. 자원개발, 신소재 등으로 사업 영역은 넓혔지만 부채 비율은 2009년 58.7%에서 2014년 88.3%로 치솟았고 영업이익률은 이 기간에 10.6%에서 4.9%로 절반 이하로 감소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포스코의 신용등급을 강등하기에 이르렀다.

정준양도 다른 역대 회장처럼 30년 넘게 포스코에 재직했다.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1975년 공채 8기로 당시 포항종합제철에 입사한 정 회장은 제강기술 과장, 제강 부장, 생산기술 부장 등을 거쳤다. 부장과 상무 시절에는 EU 사무소장을 맡기도 했다.

입사 27년 만에 상무이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광양제철소 선강담당 부소장이 됐다. 이후 정준양은 2004년 전무로 승진한 뒤 2006년 부사장, 2007년 대표이사 사장으로 고속 승진했으며, 포스코건설 사장도 거쳤다. 사장으로 재직한 2007년에는 친환경 신기술인 파이넥스(FINEX) 공법의 상용화를 주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도 받았다.

김학동

포스코 2인자 자리인 철강부문장(사장). 포스코그룹에서 사실상 회장 다음으로 중요한 직책으로 평가받는 자리에 김학동이 선임됐다. 포스코가 다양한 신사업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룹의 핵심사업은 철강사업으로, 이를 총괄하는 직책이 바로 철강부문장이다.

김학동은 그룹 계열사인 SNNC 재직 당시 소재사업도 이끌었다. 이에 그는 포스코의 신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내실을 다지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킨바 있다. SNNC는 스테인리스강의 주원료인 페로니켈(니켈 20%·철 80%)과 기타 부산물을 생산·판매하는 회사로 2006년 포스코와 뉴칼레도니아 업체인 SMSP가 49대 51 비율로 설립됐다.

당시 김학동의 홀로서기는 성공적이었다. 부임 직전인 2012년 190억원이었던 SNNC의 영업이익은 2년 뒤 440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조업기술 개발로 원가를 절감해 고품질 제품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해외영업에 나선 것이 수익 개선으로 이어졌다. 이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그는 2015년 포스코 역사상 처음으로 출자사 대표에서 경영진 진입에 필수적인 제철소 소장으로 임명될 수 있었다.

철강뿐 아니라 소재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확보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히는 만큼 그는 탄산·수산화리튬 국산화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설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김학동은 1959년생으로 서울대 금속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카네기맬런대에서 재료학을 공부했다. 포스코에서는 광양 선강담당 부소장, SNNC 대표이사, 포항제철소장, 광양제철소장, 생산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안동일

현대제철 대표이사 사장. 포스코에서만 35년 가까이 일한 제철설비 분야의 전문가로, 최정우 회장과 한솥밥을 먹었으나 2019년 초 현대제철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업계 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포스코 고문으로 일하다 현대제철 생산·기술부문담당 사장으로 영입됐을 당시 포스코의 영업기밀이 경쟁사에 유출될 수 있다는 논란이 나왔다. 당시 최정우는 안동일의 이직을 놓고 “포스코 제철소 운영 경험이 있는 인사가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대승적 차원에서 현대차그룹의 요청을 양해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히면서 “(안 사장이) 주요 기술이나 영업비밀 등을 유출한다면 법적 조치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안동일 본인도 직접 포스코의 기술유출 가능성에 대해 “현대제철이 현대차그룹 계열사로서 상당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기술 유출에 관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으며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은 양사 가) 한국 철강 발전을 위해 대외 통상 이슈에 같이 대처하고 글로벌하게 협조하자고 했다”고 언급했다.

안동일은 1984년 포항제철에 입사해 포항제철소 설비기술부 부장, 포스코 기술위원을 거쳐 광양제철소와 포항제철소에서의 소장까지,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다. 이후 자문으로 물러났다가 2019년 2월에 현대제철에 영입됐다.

그는 1959년 5월23일 충청북도 제천에서 출생했으며 부산대학교 생산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맥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장으로 재직할 당시 순천대학교 초청 특강에서 혁신과 변화를 추구해 온 인생사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을 어릴 적 24km의 거리를 걸어서 등교했던 ‘시골소년’이었다고 말하면서 제철소장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통해 ‘FF(Fact Finding)’, 즉 팩트를 파악하고 현상을 문제와 연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원과의 소통에도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광양제철소장에 임명된 이후에는 직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데 집중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에 걸쳐 모든 직원들과 정기적으로 이메일을 통해 소통하고 도시락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철강인으로서의 자부심도 돋보인다. 안동일이 신입사원들에게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를 선물하면서 철이 인류역사에서 가지는 의미와 철강업 종사자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했다는 일화도 알려져있다.

안동일은 최정우와 비철강 사업부문인 수소 사업에서도 맞붙게 됐다. 최근 그는 '고순도 수소 공급 및 인프라 확대를 위한 사업계획'을 발표하면서 향후 수소 사업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수소 생산·유통시설 확대 구축 △주요 사업장 수소차 도입 및 수송차량 확대 적용 △수소를 활용한 친환경 연료전지발전 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임승규

포스코기술투자 신임 대표이사 사장. 지난해 말 포스코 그룹은 임승규를 포스코전략기획본부 재무실장에서 포스코기술투자의 사령탑으로 임명했다. 그는 최정우가 부사장·사장 재임시절 이끌던 가치경영센터 출신이다.

가치경영센터는 회장 직속 조직으로 국내·외 사업 및 재무를 관리하는 포스코 그룹 내 컨트롤타워 격으로, 가치경영센터를 거쳐 재무실장을 맡았던 이력은 최정우가 거쳐온 길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3년생인 임승규는 부산대학교에서 회계학을 전공해 최정우의 동문이기도 하다. 1988년 포스코에 입사한 이후 30년 넘게 그룹에서 근무한 그룹 내 ‘재무통’으로 꼽히는 점도 최정우와 유사하다.

그는 재무위원, 재무기획그룹리더, 재무투자본부 원가관리팀장 등을 거쳤으며, 최정우의 지휘 아래 자금 조달·운용·관리 등으로 철강사업 고도화, 미래 먹거리 발굴 등에 힘을 실었다.

또한 임승규는 2016년 해외사업관리실에서 크라카타우포스코(PT. Krakatau POSCO), 장가항포항불수강, 에스에스비나(POSCO SS VINA), 브라질 일관제철소(CSP) 사업 등을 총괄한 이력도 있다. 글로벌 철강부문에서 원가관리, 이익 창출 등의 성과를 인정받은 것이 인사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포스코기술투자는 2012년부터 6년간 외부 금융 전문가 출신 CEO 체제였다. 그룹 내에서는 그가 금융 전문가에 견줄 만한 전문성을 갖췄다고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 미디어SR(http://www.medias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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