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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군경회 김덕남회장 어떻게 거부가 되었나

  • 소운  (poscoman68)
  • 2019-07-03 13:3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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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군경회 김덕남회장 어떻게 거부가 되었나,

 
                             [한겨레21] 평생을 상이군경회 일에 ‘봉사’, ‘1천억원대 재산’이라고 추정


김덕남 대한민국상이군경회장이 4월17일 불법 대명사업 의혹을 받는 미디어사업소의 사기 방조 혐의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수행원들이 촬영을 막으면서 사진의 초점이 흔들렸다.서울 여의도에 자리잡은 대한민국상이군경회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훈단체다. 4월24일 69차 정기총회를 열었으니, 사람 나이로 치면 고희의 풍상을 견뎌냈다. 2017년 말 회원 수가 10만6천 명(누리집 자료), 지금은 조금 더 줄었을 것이다.

<한겨레21>은 국민의 존경을 받아야 할 보훈단체의 고질적 비리를 파헤치는 탐사기획 보도를 올 1월부터 이어오고 있다. 제1246호 ‘고엽제전우회(전우회)처럼 돈 버는 법’ 기사가 시작이었다. 앞에선 관제데모를 이끌면서 뒤로 개인 치부에 골몰한 ‘전우회 3인방’의 비리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북파공작원들이 꾸리는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특임)의 골재 사업 비리와 80억원대 숨은 채무도 들춰냈다.

탐사보도로 벗겨낸 양파 껍질 속 보훈단체의 가장 뼈아픈 허상은 “회장만 있고 회원이 없다”는 것이었다. ‘장기집권’을 꾀하는 회장은 잘못을 지적하는 회원들을 ‘주먹’과 ‘소송’으로 다스렸다. 그렇게 다다른 목적지는 회장과 극소수만을 위한 ‘돈’ 잔치판이었다. 전우회도 특임도 판박이였다. 실상을 알게 된 많은 회원들은 “우리는 속았다”며 극도의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4월24일 “보훈단체 수익사업의 혜택이 일부 운영진에게 돌아가는 폐단을 극복하고 각 단체 회원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훈단체 개혁의 핵심”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머뭇거리던 보훈처가 이제야 비리의 급소에 칼을 들이댈 기세다.

상이군경회 관계자는 전우회나 특임이 저지른 비리의 원조가 상이군경회라고 털어놓는다. “상이군경회를 따라 배웠다. 아주 못되게 배웠다”고 말한다. 2017년 말 상이군경회의 수익사업 연매출은 1800억원을 넘어섰다. 각종 비리가 드러나면서, 올해는 1천억원 아래로 줄어들 것이라 한다. 2012년 취임한 김덕남 회장은 7년 이상 장기집권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김덕남의, 김덕남에 의한, 김덕남을 위한 상이군경회의 흔적을 추적한다. 그로 인한 불법 명의대여 사업(상이군경회 이름을 빌려서 하는 사업) 피해자들의 아픔을 따라간다.

누구를 위한 상이군경회인지, 간곡하게 물으려고 한다. 회원들의 사랑과 국민의 존경을 받는 상이군경회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김덕남(76) 회장은 삶의 뿌리가 대한민국상이군경회다. 그의 이력서는 상이군경회로 시작해서 마지막 줄까지 상이군경회로 이어진다. 1967년 해병대를 제대해 정신장애 2급 상이등급(1989년 4급으로 수정)을 받은 김 회장은 당시 광주지회 지도과장으로 상이군경회 일을 시작한다. 1988년 광주지부장 자리에 올라, 2006년까지 18년 장기집권을 한다. 2006년 이후 2년 집행유예(폭력, 횡령죄) 기간에 상이군경회 이력이 잠시 끊기지만, 2008년부터 상이군경회 중앙회 이사로 복귀한다. 2012년 보궐선거에서 1년짜리 회장에 당선된 뒤, 2013년과 2017년 두 차례 선거에서 이겨 7년 이상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 광주 대로변 12층 건물 인수

그는 매주 목요일이면 서울 여의도에서 광주로 내려간다. 자신의 골프장이 있는 고향에서 긴 주말을 보낸다. 상이군경회 사람들은 “김 회장이 부자”라는 데 아무 이견을 달지 않는다. 1천억원대 재산가라는 소리도 들린다. 평생을 상이군경회 일에 ‘봉사’한 김 회장이 어떻게 거부가 될 수 있었을까. 4월21일, 김 회장의 재산이 있는 광주로 내려갔다.

김 회장이 최근 인수한 대규모 자산은 광주광역시청 근처 요지에 있는 청연한방병원 건물이다. 김 회장과 가족은 2015년 유한회사 ㅅ사를 세워, 법인 명의로 그 건물을 인수했다. 근처 중개업소에 알아보니, 시청에서 상무중앙로 쪽 수백m 떨어진 대로변의 12층 빌딩은 알짜 중의 알짜였다. 1~3층엔 카페와 증권사 등 사무실이 자리잡았고, 4~8층은 한방병원과 병원, 치과·내과·외과·영상의학과 의원 등이 공실 하나 없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시세가 150억원 정도라고 했다.

김 회장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내 골프장을 담보로 70억원 은행대출을 받아 빌딩 인수 자금을 마련했다”면서 “재산 때문에 숱한 고소와 진정을 당해 여러 차례 검찰과 국세청 조사를 받았지만 나는 깨끗하다”고 말했다. 유한회사 ㅅ사의 등기부에는 아들이 대표, 아내와 두 딸이 이사로 등재돼 있었다. 김 회장은 “나와 아내, 자식 셋, 이렇게 우리 식구 다섯이 15~25%씩 ㅅ사 지분을 나눠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등기부로 확인한 실제 은행 근저당 금액은 44억원이었다.

김 회장의 또 다른 재산은 전남 장성의 골프장이다. 9홀 규모의 백양우리컨트리클럽으로, 광주 건물보다 재산 가치가 더 크다고 한다. 광주에서 가까워, 시민들이 편하게 찾는 골프장으로 잘 알려졌다. 김 회장 가족은 ㄷ개발이란 주식회사 명의로 골프장 지분을 100% 가지고 있다. 광주 건물을 소유한 유한회사 지분과 마찬가지로 “가족 5명이 나눠 갖고 있다”는 것이 김 회장의 설명이다. 아들이 역시 대표이사고, 아내가 이사로 올라 있었다. 그는 “은행 부채가 70억 정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등기부를 확인한 결과, 골프장엔 은행 근저당이 36억원 설정돼 있었다. 나머지 36억원 근저당은 광주 빌딩을 소유한 가족 유한회사 ㅅ사와의 거래로 확인됐다.

사진 왼쪽부터,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본부가 있는 서울 여의도의 중앙보훈회관 건물, 김덕남 회장 가족이 보유한 전남 장성 골프장과 광주광역시 대로변 12층 빌딩 모습. 류우종 기자, 김현대 선임기자
“재산 축적 뿌리는 광주 상이군경회 사업”

김 회장 가족이 보유한 골프장과 광주 건물에 딸린 은행 대출 총액은 70억원 정도로, 그의 부동산 순자산 가치가 상당히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 김 회장은 현금 보유가 넉넉해 이자가 비싼 사채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이만한 재산을 보유한 데 대해 “20년 전부터 광주 시내 빌딩을 여러 개 갖고 있었고, 지금은 그때보다 오히려 재산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3년 파이프 회사인 주식회사 고리를 인수할 때 가족 돈 220억원을 투자했다”면서 “그 뒤 연 400억원 매출을 일으키던 고리를 팔았고, 그 자금으로 골프장과 광주 건물을 산 것”이라고 덧붙였다. 2003년 이전부터 원래 재산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1999년 자신을 비난하던 회원을 집단폭행한 사건의 경찰 조사기록에서도 김 회장의 대단한 재산 윤곽이 드러난다. 당시 재산 상태와 월수입을 묻는 경찰의 질문에 김 회장은 “광주 누문동 6층 빌딩(30억 시세), 상무대 대지 260평(10억), 동운동 대지 116평(15억), 연제동 대지 130평(2억) 등 부동산이 100억 정도 되고, 100억원대 골프장(900클럽) 지분을 포함해 동산이 150억원 정도 된다”고 진술했다. 20년 전 그때 이미 250억원대 재산가였다는 것이다. 월수입 또한 2천만원에 이른다고 진술했다.

상이군경회에서 받는 급여 이외에 임대 수입과 사업체 운영으로 훨씬 더 큰 돈을 벌고 있었다는 말이다. 주변 사람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맞을 것”이라고 수긍했다. 실제로 김 회장은 3년 동안 주식회사 고리의 대표를 맡아 사업 경험을 쌓기도 했다.

문제는 김 회장의 초기 재산 형성 과정이 얼마나 투명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와 가깝게 지낸 지인들과 수사 대상에 오른 몇 가지 사건 자료를 통해 간접적으로 살펴보았다. 2006년 폭력과 상해, 횡령죄로 집행유예 2년을 받은 사건 자료에서, 김 회장의 돈 버는 행태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당시 상이군경회 광주지부장이던 김 회장은 5억8천만원의 비자금 통장을 운영했다. 고리의 법인 자금 1억여원을 횡령한 흔적도 드러났으나, 자신이 회사에 빌려준 20억원의 이자를 받은 것이라고 해명해 처벌을 피했다. 그의 통 큰 씀씀이와 폭넓은 네트워크도 드러났다. 수술받은 상이군경회 전 회장한테 3천만원을 건넸으며, 국회의원 ㅇ씨와 당시 광주지검 부장검사 ㅂ씨, 광주국정원 ㅇ국장한테 100만원씩 주었다는 비자금 출납 기록도 확인됐다.

익명을 요구한 상이군경회 광주지부 관계자는 “그가 축적한 부의 뿌리를 찾아가면 결국 상이군경회 사업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김 회장은 70년대 후반부터 광주에서 보훈복지인쇄조합이란 수익사업체를 만들어 관공서 납품을 싹쓸이했다”면서 “1988년부터 20년간 상이군경회 광주지부장 때가 재산 축적의 전성기였다”고 꼬집었다. 또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투명하지 않은 시절이었다”면서 “금남로지하상가와 양동복개상가 주차장 운영 사업을 따내, 큰돈을 벌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보훈처 간부들도 김 회장 눈치 본다”

1997년부터 김 회장의 비리를 추적하고 있는 광주의 상이군인 소민윤씨는 “1989년 제대해 상이군경회를 찾아갔고, 그때 광주지부장이던 김 회장을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그는 “김 회장 덕분에 보훈복지회관 건물의 3개층을 빌려 보훈연금매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면서 “하지만 당시 김 지부장의 형과 동생한테 가게를 여러 개 내주고, 광주시지부 간부 3명을 매장 법인이사로 올려 대신 급여를 주도록 했다”고 털어놓았다.

광주의 다른 상이군경회원은 “김 회장은 상이군경회 수익사업에서 어떻게 돈을 만들어낼지, 일이 터졌을 때 어떻게 처벌을 피해나갈지, 능수능란하게 처신하는 인물”이라면서 “‘돈’과 ‘법’과 ‘주먹’의 길을 아는 수완가”라고 평했다. 재산가이자 소송의 달인이고, 때로는 서슴없이 힘으로 반대 세력을 제압한다는 것이다.

상이군경회 다른 관계자의 말이다. “상이군경회에서는 아무도 김 회장한테 대들지 못한다. 조직을 완전히 장악했다. 상당수 보훈처 간부들도 김 회장 눈치를 본다. 약점이 잡혔거나 과거 향응 금품을 받았다. 지금까지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지시가 잘 먹히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상이군경회 비리 척결을 지시해도, 간부들이 말리거나 피하려고만 했다.”

김 회장은 가짜 상이군인 논란에도 휩싸였으나, 2017년 재심의에서 우여곡절 끝에 적법성을 인정받는다. 내용은 이렇다. 베트남전쟁에 복무했던 그는 1967년 정신과 질환으로 상이등급 2급으로 판정받았다가, 23년 뒤인 1989년 4급으로 등급을 수정받는다. 그가 1988년 상이군경회 광주지부장에 취임한 뒤의 일이다. 김 회장은 2016년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가짜 상이급수 추궁에 이렇게 답했다. “애초에 2급 등급만 받았지, 정확하게 무슨 병명인지 잘 몰랐다. 광주지부장이 되니까, 정신질환 2급이면 정신분열증인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지부장을 하느냐고 반대자들이 진정서를 냈다. 그래서 중앙보훈병원에 다시 신체검사를 의뢰해서 지금 등급으로 수정받은 것이다.”

상이급수 2급에서 4급 하향조정 논란

김 회장의 상이등급 진위를 떠나, 지금도 가짜 상이군인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가짜 상이군인과 가짜 고엽제 등급자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가보훈처는 올 1월 부정이 의심되는 상이등급자 재판정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3년 주기의 재판정 대상 질병 범위를 16개에서 22개로 확대하고 수사기관 요구가 있을때 직권 재판정 신체검사를 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사진기자 봉변
 
“사진 다 지워!”
 
4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출입구 앞. 김덕남 상이군경회장이 건장한 수행원 무리를 이끌고 나타났다. <한겨레21> 류우종 사진기자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순식간에 대여섯 명이 달려들었다. “사진 다 지워”라는 고함이 터져나왔다. 류 기자의 팔목을 비틀고 카메라 플래시를 잡아챘다. 여럿의 완력을 홀로 당할 수 없었던 류 기자는 사진 파일을 지우는 것으로, 거친 상황을 우선 피했다. 다행히 사진은 백업 파일로 복사 저장해놓았다. <한겨레21>은 10만여 상이군경회원의 대표인 김 회장의 당시 사진을 싣는다. 사회적 공인인 김 회장은 당연히 언론의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다.

이날 벌어진 작은 사건은 상이군경회 역사이기도 한 ‘김덕남’이란 인물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날 김 회장 재판의 방청석도 그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상이군경회 직원만도 10명 남짓 재판을 방청했다. 김 회장은 상이군경회 미디어사업소 사기 사건의 피고로 이날 법정에서 최후 변론을 했다. 검찰은 상이군경회의 ‘대명사업’을 벌인 권아무개 미디어사업소장이 하청업체에 진 채무 60억원을 갚지 않아 상이군경회가 대신 변제토록 한 것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김 회장은 권 소장의 사기를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광주=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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